【단박인터뷰】 2024년 4월 24일 수요일 방송
최근 광주 5.18 청소년 오케스트라 제4대 단장으로 영화 양림동 소녀의 임영희 감독이 취임했습니다. 임 감독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여성 시민군이자 극단 광대 회원으로 문화 활동을 펼쳤는데요. 특히 항쟁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작에도 참여했습니다. 오늘 단박 인터뷰에서는 임영희 감독을 편수민 PD가 직접 만났는데요. 지금부터 함께 들어보시죠.
******** (녹음물) ********
1. <함께하는 세상, 오늘> 청취자분들에게 본인 소개를 좀 해주시죠.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광주를 살아가는 518 청소년 오케스트라 단장 임영희입니다.
2. 광주5·18청소년오케스트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에 앞서 먼저 감독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감독님께서는 5.18 여성 시민군이셨는데요. 어떤 계기로 시민군에 합류하게 되셨을까요?
- 저는요. 1976년도부터 민주화 운동을 하고 있었어요. 그때도 1980년대에도 YWCA 농촌부위원, 그다음에 송백회 간사, 그다음에 현대문화연구소 간사 또 뿐만 아니라 YMCA 성서 연구회 거기서 회장을 맡고 있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민주화 운동에 같이 합류해서 5 18도 참여하게 된 거죠.
3. 우리 지역 사람들이라면 이 노래를 모를 수 없죠. ‘임을 위한 행진곡’ 제작에도 참여하신 것으로 아는데요. 당시 이야기를 좀 들어보고 싶어요.
- 저는 그때 제가 특별한 건 아니고요. 광주 전남 사람이라면 계엄에 맞서서 다 의롭게 다 투쟁을 했던 때가 그때 5.18 이잖아요. 근데 5.18 이후에 제가 극단 광대에서 이제 문화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광대 단원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때로 수배 당하고 때로는 어떤 사람들은 죽기도 하고 이런 상황에서 우리도 뭔가 해야 되지 않나 오월 알리는 작업을 하자 해서 광대 후신으로 만들었던 게 '갈릴리' 라는 연극 단체를 만들었어요.
그래서 전국에 서울 YMCA 다락방 또 해남 구례 천주교 이런 데 다니면서 오월 알리기 운동하다가, 5.18을 전국적으로 테이프 만들어서 전국에 알리는 것을 하자고 여러 몇 사람이 뜻을 모아서 황석영 선생님 집에서 하게 됐죠. 그래서 아마 이때도 우리 모두 각오를 했어요. 이 알리는 작업을 하는데 우리가 이 테이프 작업은 김민기의 공장위 불빛 처럼 테이프로 모든 전국에 알리는 작업을 한데 우리도 또다시 어떤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각오 속에서 두려움에 떨면서 그때 5공(화국) 시절이잖아요. 그때 하게 됐어요.
제가 약간 장애가 있어서 발음이 좀 안 좋은데 좀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4. 알겠습니다. 저희가 좀 정리를 해보자면 자연스럽게 5.18 시민군이 되셨고 또 광주의 5월을 알리기 위해서 테이프 녹음 작업을 해서 많이 알리려고 했는데 그 가운데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이 노래 작업도 테이프 홍보 활동을 하면서 함께 참여하게 됐다.제가 이렇게 이해했는데 맞나요?
- 네 그전에 1980년 7월경에 광대 멤버였던 김선출 또 전용호하고 저 셋이서 서울로 도망갔을 때 광주 항쟁에서 낭독 됐던 (전남)도청에서 유인물들을 모아가지고 그걸 또 테이프 작업한 경험이 있어요. 그래서 그때도 우리가 왜 총 들고 싸웠는가 우리가 무엇 때문에 계엄군의 폭정에 맞서서 우리가 민주화 운동을 어떤 당위성을 알리는 그런 유인물들을 각기 녹음해서 같이 합창도 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임을 위한 행진곡 테이프 작업이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 같아요.
5. 그렇군요. 단장님께서는 젊은 시절에는 5.18 시민군으로 또 극단 광대 회원으로 문화활동을 펼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수년의 세월이 지나고 영화 양림동 소녀 감독으로 또 변신을 하셨어요. 아드님이시죠? 오재형 감독님과 모자 감독으로 영화 양림동 소녀를 함께 제작하셨는데요. 양림동 소녀는 어떤 작품이고 또 어떤 계기로 이제 감독으로서 참여하게 되셨는지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 제가 보다시피 왼손으로 그렸고 오른손을 못 쓰잖아요. 원래 그림 그렸던 사람도 아니고 근데 코로나라는 팬데믹 시대였잖아요. 아들이 권유했어요. 엄마 좀 왼손으로 한번 그림을 그려봐. 그래서 제가 크레파스하고 뭐 사인펜 이런 걸 이용해서 그림을 그렸는데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어떤 그림을 그릴까 처음에는 좀 잠깐 고민하다가 그림 위주가 아니고 나를 한번 그려보자.
나의 어렸을 때 중고등학교 시절 또 나에게 사랑하는 그때 학창시절에 꿈이 있었잖아요. 그래서 남한테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려보고자 했는데 아들이 보더니 깜짝 놀라면서 엄마 다시 한 번 5.18이란 민주화 운동 한 걸 그려봐 독려를 했어요. 그래서 이제 그 칭찬에 힘입어 가지고 제가 이제 쭉 장애인 삶까지 그렸는데 어느 날 아들이 마이크하고 카메라를 들고 왔어요.
엄마 나레이션을 좀 해줘 봐 그래서 왜 그랬더니 엄마가 이렇게 그냥 나한테 설명 하듯이 좀 해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방에서 하게 된 거예요. 그랬는데 아들이 엄마 나 믿어봐 그래서 나는 야 이런 걸 누가 볼까 엄마 내가 감독이잖아 한번 믿어봐 그렇게 해서 만들게 된 거예요.
아들은 이 양림동 소녀를 보고 엄마의 삶에 대해서 굉장히 감동을 받았다고 해요. 그래서 어쨌든 제가 이 그림을 그리고 보고 나니까 나를 만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아요.
6. ‘양림동 소녀’는 (임 감독님께서 직접 겪은 5.18민중항쟁과 여성운동가로서의 삶과 뇌졸중으로 장애을 갖고 살아가는 노년의 삶 등) 임 감독님의 자전적 이야기인데요. 감독님께서는 진도에서 태어나신 것으로 아는데요. 진도소녀가 아니라 양림동 소녀인 이유가 있나요?
- 제가 이제 진도에서 태어나서 진도에서 말하자면 옛날에 초등학교 졸업 후에 광주를 갔는데요. 진도에서는 말하자 그야말로 어린 시절 개구장이 시절이나 초등학교 시절에 소풍 갔던 기억이 있지만 양림동은 중고등학교 민주화운동 또 결혼 아들 낳을 때까지 여러 가지 나의 주체적인 삶이 들어 있잖아요. 그래서 나의 어떤 생각과 또 행동과 모든 실천적인 삶이 거기 양림동에서 들었기 때문에 양림동 소녀라고 제목을 붙이게 됐습니다.
7. 임 감독님이 직점 그린 그림으로 영화가 만들어졌는데, 뇌졸중으로 인해서 오른손을 쓰지 못하셔서 영화 제작을 하는 것이 쉽지 만은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만?
- 처음에 뇌졸중 쓰러졌을 때는 진짜 한 걸음도 못 걷고 말도 더 어눌했고 손도 거의 움직이지 못한 상태로 중환자실에 있다가 이렇게 나왔는데요. 점점 한 10여 년 세월이 지나면서 제 몸이 조금씩 좋아졌다는 것은 참 긍정적인 나를 만나보게 된 것 같아요.
장애를 입었던 내가 우울하지 않고 이 상태에서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아들이 권유로 제가 이제 그림을 그리고 나레이션하고 그다음에 남편이 제목 써주고 딸이 또 번역해서 이제 영화가 됐잖아요.
그래서 또 다른 제 노후의 삶이 전개되고 있어요.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도 만나고 또 청년 학생 또 여러 가지 사회운동가들을 만나면서 제 인생 3막이 아주 아름답게 펼쳐지고 있거든요.
그래서 이런 기회를 준 아들 오재형 감독 되게 고맙고 엄마하고 같이 어떤 사회에서 필요한 약자나 우리 삶에 대해서 어떤 경외를 갖고 또 같이 공동체를 꿈꾸는 사람들이 이야기 나누고 하는 그런 삶이 나는 너무나 좋았고 그래서 이 영화을 같이 상영하면서 전국적으로 널리 이렇게 많이 성원을 보내주신 분들한테 너무너무 감사하고 또 노후에 좌절하지 않고 또 함께 공동체적으로 이렇게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게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8. 그리고 ‘양림동 소녀’는 지난해 전국의 단편영화제에 초청받아 상영되는가 하면 제15회 서울국제노인영화제 대상, 제24회 제주국제장애인권영화제 대상을 받는 등 굉장히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책으로도 만들어질 계획이라고요? (북 펀딩 중이라고 하던데, 자세히 좀 말씀 부탁드립니다.)
- 이런 영화는 좀 드물다고 해요. 단편이면서 애니메이션, 하나의 여성 구술 생애사 영화인데 청소년 여성 장애인 노인 그리고 민주화 과정까지 들어있는 영화 그것도 애니메이션이잖아요. 근데 어떤 점에서 관객들의 울림이 있었든지 이렇게 각기 호응이 있었어요.
근데 제가 이 영화제에 다니면서 감독과의 대화를 하면 꼭 어떤 분들이 책으로는 안 나오나요?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너무나 그 그림이 갖고 싶다 이런 말씀들을 하시더라고요. 근데 마침 그 오월의 봄 출판사라고 거기서 이제 제안이 와가지고 책을 출판해서 펀딩을.. 제가 나이 70이 다 돼가 하잖아요. 제 주위 친구들은 펀딩이 뭔지를 모를 거예요. 인터넷도 못 들어가고 그래서 차라리 서점에 가서 사는 게 더 편한 그런 세대잖아요.
근데 펀딩 금액을 출판사가 저를 배려해가지고 100만 원을 잡았어요. 펀딩이 많이 안 들어올 거라 예상했는데 오늘 보니까 360만 원이 되더라고요. 엄청 호응이 좋았죠. 그래서 저도 깜짝 놀랐는데요. 어쨌든 5월 10일경에 책이 출판할 예정입니다.
8-2. 양림동 소녀를 책으로 만든 북 펀딩 페이지가 있더라고요. 이 북 펀딩은 언제까지 하는 건가요?
- 5월 1일까지 하고 출판 예정일은 5월 9일이나 10일까지 그러니까 5월 1일이 마감이죠.
9. (제가 5월 1일까지 참여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임 감독님의 영화 같은 삶은 지금도 Ing 진행 중이지 않나 싶어요.
지난 3월에 <광주5.18청소년오케스트라> 4대 단장으로 취임하셨습니다. 소감 안 여쭤볼 수 없겠죠?
- 광주는 지금까지 5.18 하면 우리 참여연대 시민군 중심 또 그 증언과 또 우리가 이어받아야 될 그 유산이어서 어떤 포커스가 그 당사자뿐만 아니라 일단 (전남)도청이나 상징적인 건물 또 헬기 사격 이런 데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 차세대들한테 우리의 좋은 정신을 평화 인권 이런 좋은 정신을 아이들한테 물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로 2021년에 창단되어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건 순수한 민간 단체예요. 그래서 임복희 예술 감독님이 벨기에서 바이올린 전공하시고 들어와서 지금 시향에 있는데 그 예술 감독님 순전히 정말 도네이션(기부, 후원) 해가지고 아이들을 좀 찾아서 예술 감독님이 이끌어 오시고 저도 그 뜻에 동참한 의미로 5.18 차세대 젊은 아이들이 음악으로서 많은 사람 위로와 치유를 주고 또 그 아이들을 통해서 우리 뜻을 민주화 운동을 이어갔으면.. 또 바람인 겁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을 보는 느낌이 너무나 좋았어요.
벌써 40 몇 년 전에 이야기잖아요. 5.18이 근데 자라는 청소년들이 위대한 광주 정신을 받들어서 음악으로 표현하고 전달하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도 또 다른 희망을 또 갖게 됐습니다. 그래서 1년 동안 열심히 해보려고 합니다.
( 임기가 1년이고 이제 연임도 가능하시죠?)
-네 그렇습니다.
10. 지난 2021년에 창단한 광주5·18청소년오케스트라! 방금 말씀하셨듯이 이제 다음 세대에게 5월의 정신을 좀 잘 전달해보고자 만들어졌는데요. 나이대라든지 또 단원은 몇 명이고 어떻게 구성됐고 5월 음악을 어떻게 그 정신을 이어가고 있는지 오케스트라에 대한 소개 좀 부탁드릴게요.
- 임복희 예술 감독님 감독 하에 5개 파트로 뉘어져지는데요. 선생님이 다섯 분이 굉장히 봉사를 하고 계시고 단원 한 45명 정도 되는데 계속 들어오려는 학생들이 참 많아요. 매주 토요일 날 광주중앙초등학교 강당에서 10시부터 이제 애들이 연습하는데 주로 이제 초등학교 3 4학년부터 중학생까지 있어요.
그래서 주로 활동 범위가 이제 5.18에 관련된 전야제랄지 또 광주시 5.18 발대식이랄지 이런 부분에서도 하고 1년에 한 번쯤 또 정기 연주회도 합니다. 그래서 좀 어린 친구들이지만 대견하고 또 음악을 통해서 광주 정신을 널리 희망하는 그 모습 볼 때 우리가 미래 희망이랄까요? 그런 점에서 이것은 육성해야 되겠다. 그래서 제가 아픈 몸에 흔쾌히 단장을 수락하기도 했죠.
11. 아무래도 5.18청소년오케스트라이다 보니까 우리 단장님께서 참여했던 임을 위한 행진곡도 자주 부를 것 같아요. 어떻습니까?
- 임을 위한 행진곡도 연주했고요. 지금 유튜브에 보면 나와 있어요. 쭉 올려져 있고 이제 앞으로 그 계획이 아이들이 올해에 찍고 또 내년에 찍고 그러면 한 10년 찍으면 10년간의 성장하는 모습이 도청 앞에서 각기 연주를 하면서 어떤 파트는 바이올린 하고 어떤 파트는 비올라 하고 어떤 파트는 첼로를 하면서 또 각자 행동을 하다가 다시 모여서 같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연주하면서 그 플레이스폼을 만들려고 지금 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게 영상으로도 전국적으로 좀 확산이 돼서 청소년들이 관심 있게 볼 수 있도록 제작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12. 혹시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어떻게 참여가 가능하고 모집 기준이 있는지 이런 것도 좀 궁금합니다.
- 일단은 3월달에 오리엔테이션을 해요. 1년에 한 번. 오리엔테이션 하고 또 잘하는 친구도 있고 이제 처음인 친구도 있잖아요. 잘하는 친구하고 처음인 친구도 상관없이 선생님 지도 하에 초급반도 같이 연주를 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고요. 물론 이제 연주 진짜 진행할 때는 먼저 배우신 분들이 또 연주를 하게 되겠죠. 그래서 그것은 상관없고..
5.18 관련 자녀일 경우에는 또 약간의 혜택이 있어요. 저소득층 자녀한테도..혜택을 준 게 만약에 악기가 없다면 배우기 힘들잖아요. 그런 아이들을 위해서 무상 대여도 해주고 있고요. 또 관심 있는 사람이면 연초에 우리가 공고가 나가니까 그때 보시고 3월달에 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13. 또 다시 돌아온 오월을 앞두고 있는 시점입니다. 5.18은 우리 단장님께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고 또 사람들에게 광주의 5월이 어떻게 기억되셨으면 하시는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 5월이라며 광주 전남 사람이라며 또 전북 사람이라며 굉장히 떨리는 날이죠. 사실 옛날에 오월은 어버이날 스승의 날 어린이날에 있어서 가족의 의미를 생각하는 또 인생을 살아갈 때 스승의 의미를 생각하는 달이었는데 지금의 오월은 우리의 무게감 있는 오월이잖아요.
벌써 44년이 지났어요. 그런데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오월을 계승 발전한다는 것은 각각 그 현장에서 자기를 나타내는 목소리가 있어야 된다고 봐요. 그래서 이 세상을 향하여 큰 소리로 이기는 목소리 또 나의 발자국을 나타내듯이 그 오월의 정신이라는 게 특별히 어떤 다른 데 있지 않고 마음속에 있는 게 아니고 각자의 자리에서 목소리를 내고 같이 협동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나아가는 것이 오월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 요즘 많이 이야기되고 있는 장애인 문제랄지 또 사회적 약자랄지 또 각기 현장에서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각자의 복지 또 어떤 나눔의 삶 이런 것들이 우리 정신이 다 하나씩 들어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정말 이기는 목소리를 좀 내고 싶습니다.
14. 끝으로, 지금까지 나눈 이야기 외에 청취자분들께 추가로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한 말씀 듣고 오늘 인터뷰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 저는 그림을 그리면서 하나 의식을 치렀다고 생각해요. 이제 우리가 이제 씨앗으로 사는 삶이 있고 씨앗으로 살다 보면 또 거름으로 사는 삶이 있잖아요. 그래서 우리 각자가 힘들더라도 좀 서로서로 위로해주고 치유해주고 이끌어주는 그런 삶이 서로 연결해 가는 삶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인터뷰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좋은 말씀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사~~~)
네, 지금까지
임영희 광주5·18청소년오케스트라
신임 단장과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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